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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다.

by 애매한 숫자 2024. 2. 13.

달라도 너무 다른 가정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

료타는 아들의 명문 초등학교 입학 면접을 볼 정도로 아들 교육에 진심입니다. 그는 야무진 아들 케이타와 다정한 아내, 비싼 차, 좋은 집, 좋은 직장을 가진 이상적인 남자였다. 다만 료타는 자신과 달리 매일 연습을 해도 도통 늘지 않는 케이타의 피아노 실력과 승부욕이 없는 아들의 성격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나름대로 이상적인 형태를 유지하던 료타의 집에 어느 날 충격적인 전화가 왔습니다. 육 년을 양육한 케이타가 진짜 아들이 아니고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황할 만도 한데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은 료타는 역시 그랬군 침착하기만 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료타 부부는 아이를 낳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찾기 위한 유전자 검사를 했습니다. 얼마 후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고 진짜 아들을 찾게 된 료타 부부는 아이의 가족과 함께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완벽한 료타 부부와 달리 허술하고 가난해 보이는 진짜 아들의 부모는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와서 이상한 농담을 하거나 병원의 실수에 대한 보상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영 부실해 보였습니다. 료타는 의식 중에 유다이를 무시하면서도 너무 다른 가정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과연 료타는 지금까지 양육해온 아들과 진짜 아들을 바꿀 수 있을지, 육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케이타와 진짜 핏줄인 류헤이를 선택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기른 정을 선택할지 핏줄을 선택할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경험을 녹여 탄생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TV 다큐멘터리 연출가였던 그는 1995년 영화감독 데뷔 후 '걸어도 걸어도'라는 작품을 기점으로 소외된 삶이나 가족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영화를 제작해 왔습니다. '바다마을 다이어리' 같이 잔잔하고 대단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감독의 대표작을 꼽으라고 하면 각각 다른 작품을 말할 정도입니다. 밝으면서도 서늘함과 쓸쓸함을 잃지 않고 메시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연출, 즉 신파가 없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두꺼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는 만큼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해오던 고레에다 감독은 모두가 받지 못할 거라던 예상을 깨고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해오던 그는 너무 바쁜 나머지 딸을 낳고서도 작업하느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잠만 자러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집을 나가는 감독을 마중 나온 딸에게 다음에 또 놀러 오라는 인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딸의 인사를 듣고 감독은 딸과 아무런 유대감 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이 감독에게 하나의 소재가 되었고 가족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탄생한 것입니다. 삶과 가족을 소재로 다뤄왔던 감독이 특기를 발휘해 자기 이야기조차 영화로 만든 셈이었습니다.

시간은 노력한다고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은 예전부터 단골 소재였습니다. 거의 법칙처럼 가난한 집과 부유한 집 아이가 바뀌는데 부유한 집 부모는 바뀐 아이를 데려오고 지금껏 길렀던 아이를 구박하거나 버렸습니다. 그렇게 부유한 집에서 자란 아이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 내쳐지지만, 긍정적으로 이겨내거나 복수하기 위해 칼을 간다는 게 주 내용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잔잔한 가족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두 가족이 처음 만나기로 한 날 문을 열고 들어온 진짜 아들의 아빠를 보고 순간 저도 모르게 진부한 드라마 법칙을 떠올렸습니다. 완벽한 료타와 비교되는 유다이의 가난한 행색만 보고 단정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재력을 떠나 아이들의 시선에서 진짜 좋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알게 됩니다. 원래 가족을 그리워하는 류세이를 위해 아빠는 안 하던 장난을 치고 집에 텐트까지 쳐서 캠핑 놀이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별을 보고 소원을 빌라는 말에 류세이는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류세이를 통해 시간은 노력한다고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쉽게 아들을 바꾼 료타도 키우던 아들이 찍은 자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료타는 물질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게 아닌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료타는 그렇게 진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은 잔잔한 작품이 주라서 지루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꽤나 자극적인 소재에 귀여운 아역배우들의 똑똑하고 깜찍한 연기가 더해져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조금 나는 따듯한 가족 영화를 보고 싶다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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