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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미숙했던 사랑에 대한 위로

by 애매한 숫자 2024. 2. 13.

소문의 할머니와 낡은 유모차 속 조제

츠네오가 일하는 심야 마작 게임방에서는 수상한 유모차 할머니에 대한 소문이 단골 안주거리입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불꼬불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데 보물이라더라 마약이라더라 추측이 무성한 괴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에 유일하게 관심 없던 츠네오는 낡은 유모차가 굴러 넘어지는 걸 목격합니다. 유모차 안에는 장애를 가진 조제가 앉아있었습니다. 첫 만남에 조제는 유모차를 살피는 그에게 칼을 휘두릅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소문 속 할머니와 유모차의 정체를 알아버린 그는 얼떨결에 할머니의 집까지 가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츠네오는 연인이 아닌 사람과 성행위를 하는 동시에 자기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과 만나는 등 오는 여자는 안 막는 이성적으로 미성숙한 대학생입니다. 그런 그가 엽기적이었던 조제와의 만남이 흥미로웠는지 그녀가 해준 밥이 맛있었는지 할머니의 집에 불쑥불쑥 찾아갑니다.

낡은 유모차에 연결된 보드

장애로 인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대신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조제는 아는 것이 많고 엉뚱한 사람입니다. 조제는 맛있는 밥을 해주고, 츠네오는 그녀가 그토록 바랬던 책을 찾아 선물합니다. 츠네오는 낡은 유모차에 보드를 연결해 그녀에게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조제를 사랑하지만 숨기기만 했던 할머니와 달리 츠네오는 밖으로 그녀를 쉽게 이끕니다.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츠네오는 복지사가 되고 싶은 대학 여자 친구에게 복지 혜택에 대한 조언을 받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설득해 집을 고쳐주는 복지 사업을 신청합니다. 집을 고치는 날, 그를 좋아하지만 연인으로는 발전하지 못한 카나에가 찾아옵니다. 복지사가 되고 싶다던 그녀는 츠네오와 조제 사이가 신경 쓰였는지 조제의 장애를 주제로 괜히 츠네오와 이야기하며 그녀를 견제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한 마디 말도 못 하고 민망하게 웃기만 하더니 츠네오는 신경 쓰였는지 그날 밤 할머니의 집에 찾아갑니다. 낮에 있던 일로 상처 입은 조제를 뒤로하고 그녀를 걱정하는 할머니는 츠네오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둘은 그렇게 단절됩니다.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단절된 시간을 보내는 츠네오는 생각보다 큰 조제의 부재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듣고 그녀를 찾아갑니다. 찾아온 그에게 조제는 서투르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런 그녀에게 츠네오는 키스하며 둘은 연인이 됩니다. 두 사람은 조제가 보고 싶다던 호랑이를 보러 가기도 하고 그녀의 집에서 동거도 시작합니다. 취업을 한 츠네오는 다가오는 제사에 부모님에게 그녀를 소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귀향길을 위해 차까지 빌려 떠나는데 조제는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난다는 걱정보다는 처음 가는 여행에 설레합니다. 둘은 조제가 보고 싶다던 물고기를 보러 수족관에 가는데 하필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 조제는 삐딱하게 굴면서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바다로 간 둘은 사진도 찍고 해변을 걷습니다. 해변을 거닐며 나누는 대화에서 왠지 츠네오가 조제를 버거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부모님은 만나러 가지 않고 여행이 되어버린 이상한 여정을 마친 두 사람은 수족관 테마로 꾸며진 이상한 숙소에서 충동적으로 하루를 묵습니다. 밤을 보낸 후 잠든 츠네오 옆에서 조제는 고백하듯 말을 합니다. 깊고 깊은 심해 속에 사는 물고기인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세상으로 나왔다고 그리고 다시 네가 없어진다 해도 괜찮을 거라고 잠든 그에게 조용히 입을 맞춥니다. 무섭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보고 싶다며 호랑이 앞에서 떨던 조제가 겹쳐 보입니다. 조제는 츠네오의 버거운 마음을 언제부터 알았는지, 끝을 예상한다는 듯한 그녀의 행동이 담담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몇 달이 지난 후 조제는 문을 나서는 츠네오에게 갑자기 야한 잡지를 선물합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건네받으며 츠네오는 인사를 건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별을 의미한다는 걸 짐작도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완전히 이별합니다.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이야기

조제와 헤어진 츠네오는 헤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사실 도망친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헤어진 연인과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조제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기다리는 카나에와 길을 걷다 츠네오는 엉엉 울어버립니다. 현실적으로 츠네오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던 조제에게 상실감이 엄청날 거 같은데, 왜 츠네오가 우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와중에 카나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욕만 나오고 츠네오가 한심합니다. 하지만 이별한 조제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처럼 안쓰럽지 않았습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장을 봐서 집에 돌아오는 그녀의 뒷모습은 씩씩하고 당차서 의존해야 할 존재는 필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게 헤어진 모습이 나오고 영화는 끝납니다. 아기자기함도 없고 어떤 난관을 이겨내는 클리셰도 없이 지독하다고 할 만큼 현실적인 결말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건조하고 지루했습니다. 혹시 이 영화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영화를 보고 글로 남긴 사람들의 여운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리뷰에는 장애를 가진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일반적인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는 조제였고, 또 언젠가는 츠네오였던 과거를 고백합니다. 현실에 굴복하고 도망쳐야 했던 순간이 사랑 앞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사람들은 노련하지 못했던 미숙한 과거를 추억하며 공감합니다. 사람들의 여운을 마음에 담고 다시 영화를 보면 지루했던 장면들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미성숙했기에 도망쳤던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다면, 또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의 이름을 바꾼 영화의 성공

영화는 2004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아 그 해 10월에 개봉하였으며, 입소문이 퍼지면서 드물게도 다음 해까지 장기 상영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영화였기 때문에 수입사는 회사 이름을 영화사 "조제"로 변경까지 하였습니다. 뭐, 현재까지도 이 영화는 국내에서 사랑받는 일본 영화 순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2020년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되어 개봉되었으며, 2016년에는 "오랜만이야 조제, 잘 지내지?"라는 문구와 함께 12년 만에 재개봉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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